::: 참선도량 해운정사 - 언론보도 :::
Home > 관련 기사

  
 해운정사(2011-01-14 10:49:12, Hit : 4546
 [2010.09.15] 동국대 간화선 국제학술세미나 회향법어 전문 [현대불교]


* 기사보기 --> http://www.seon.or.kr/news/20100915_1.pdf

* 기사보기 --> http://www.seon.or.kr/news/20100915_2.pdf

* 기사내용

"참된 화두 받아 실다운 의심으로 일념에 들라"
"일거수일투족 '참 나' 찾는 화두 들어 대오견성하라"

간화禪 세계를 비추다 (4)진제스님-동화사 조실 "향상의 정맥"
대구 동화사·부산 해운정사 조실 진제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원장 로버트버스웰)이 동국대 중강당에서 8월 12~13일 개최한 간화선 국제학술세미나 이튿날인 13일 회향법어를 했다. 스님은‘향상의 정맥’을 주제로 간화선 실수(實修)의 과정에 대해 법문을 했다.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방금 들어 보인 이 주장자 이 진리, 몇 사람이나 알꼬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성인들도 다 알지 못함이로다.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빛 용으로 화해서
     한량없는 용의 조화를 마음대로 부림이로다.

     자개주장기인회(這箇拄杖幾人會)
     삼세제성총불식(三世諸聖總不識)
     일조주장화금룡(一條拄杖化金龍)
     응화무변임자재(應化無邊任自在)

산승이 27세 때 화두를 타파해 이렇게 게송으로 글을 써서 올리니, 향곡(香谷) 선사께서 이 게송을 보시고는 전구(前句)는 묻지 아니하고, 후구(後句)를 들어서 대뜸 물으셨습니다. 這箇拄杖幾人會 三世諸聖總不識 이 구절이 전구가 되고, 一條拄杖化金龍 應化無邊任自在 하는 구절이 후구가 되는데 이 뒷구절을 들어서 대뜸 물으신 것입니다.
“너 문득 용을 잡아먹는 금시조(金翅鳥)를 만나서는 어떻게 하려는고?”
여기에는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즉시 답하기를,
“屈節當胸退身三步(굴절당흉 퇴신삼보; 전신(全身)을 움츠리고 당황하여 몸을 세 걸음 물러가다)입니다.”
이렇게 답하니, 향곡 선사께서는 “옳고, 옳다!”라고 하시었습니다.
50여 년 전 산승이 이 구절을 들어 금오(金烏) 선사께,
“향곡 선사의 물음에 산승이 답한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하고 물으니, 금오 선사께서는
“용이 살아가는 모습일세”라고 답하시어 서로 상통이 됐습니다.

간화선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수행법이지만 법맥(法脈)을 통해서만 내려오다가, 중국으로 넘어와 간화선을 참구한 공덕으로 무수의 도인(道人)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귀한 수행법이 오직 한 가닥 한국에만 남아있으니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처지라, 그래서 산승이 다시금 전 세계 선풍을 크게 드날리기를 바라는 뜻에서 간화선을 실답게 참구(參究)하는 방법을 소상히 말씀드릴 터이니, 여기 모인 모든 분들께서는 잘 경청하여 받아가져서 일생의 귀한 자산이 되고 나아가 대오견성(大悟見性)하여 자기의‘참나’를 밝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간화선을 실답게 참구하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선지식으로부터 참된 화두(話頭)를 받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실다운 의심(疑心)으로 일념(一念)에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승이 여기 모인 모든 분들에게 화두를 드릴 터이니, 화두가 있는 분은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분들은,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어서 오매불망 간절히 의심하고 씨름해서, 가고 오고 일하고 산책하고 하루하루 생활하는 그 가운데 흐르는 물과 같이 화두가 끊어지지 않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화두일념(話頭一念)이 도래하지 않으면 깨달을 분(分)이 없습니다. 한강의 모래알 숫자와 같은 무한한 전생에 중생의 습기(習氣)만 익혀왔기 때문에 설사 출가인연(出家因緣)을 맺었다 할지라도 사사시주(四事施主)의 은혜를 녹일 수가 없고, 생사안두(生死岸頭)에 다다라 자유의 분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중생의 업식(業識)과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화두일념이 되어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쭈욱 흐르다가 무르익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는 앉고 서고 눕고 보고 듣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모르게 되니,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힘이 솟구치게 되는 법입니다. 그 힘에 모든 삼생의 업이 다 소멸되고 부처님과 같은 밝은 눈을 갖추어서 너도 도인(道人)이요 나도 부처가 되는 법입니다.
이 법을 깨닫는 이치는 오직 부처님 법에 있지 다른 종교나 가르침에는 있질 않습니다. 다른 종교는 그저 어린아이들의 울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니, 모든 분들이 대오견성할 수 있도록 정진에 정진을 더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석일(昔日)에 반산보적(盤山寶積) 스님이 어느 해 한 철 공부를 마치고 해제 후, 걸음걸음 화두와 씨름하며 다른 처소로 가던 길에 우연히 식육점 앞을 지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와서,
“깨끗한 고기 한 근 주시오”라고 말하니, 주인이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차수(叉手)하면서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깨끗하지 못한 고기입니까?”이 말이 귓전을 스치는데 보적 스님에게 팔부의 눈이 열렸습니다.
또 다시 정진에 몰두하다가 어느 날, 마을 동구 밖을 지나가다가 상여꾼들을 만났습니다. 상여꾼들이 노제(路祭)를 지내고 상여(喪輿)를 메면서 선소리하기를,
“청천(靑天)의 붉은 수레는 결정코 서쪽으로 기울어가건마는, 알지 못하겠구나. 금일 영혼은 어디로 가는고?”라고 하니, 상주들이 일제히“아이고, 아이고!”하면서 곡(哭)을 했습니다. 이 곡하는 소리에 보적 스님은 여지없이 확철히 깨달았습니다.
스님은 그 길로 마조(馬祖) 선사를 찾아가 점검받아 마조 선사의 법을 이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80여 년 전 양주 망월사(望月寺)에 30년 결사를 하자고 발심한 전국의 스님들이 다 모여들어 참으로 실답게 수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용성(龍城) 선사를 조실로 모시고, 조계종의 초대종정이셨던 석우(石友) 선사를 선덕으로 모시고, 혜월(慧月)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운봉(雲峰) 스님을 입승으로 하여 여법히 용맹정진에 몰두했습니다.
반살림이 도래했을 때 조실이신 용성 선사께서 법상에 올라 법문하시기를,
“나의 참 모습은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하고 역대의 모든 도인들도 보지 못함이어니, 모든 대중은 어느 곳에서 나의 참모습을 보려는고?”라고 일구(一句)를 던지시니, 이 때 운봉 스님이 일어나 답하기를,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하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니 용성 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즉시 법상에서 내려오셔서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대문을 들어 30여 년 전에 산승의 스승인 향곡선사께서 산승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만약 당시에 용성 선사가 되었다면, 운봉 선사가‘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다’라고 답을 할 적에 무엇이라고 한마디 하고 내려가겠느냐?”
만일 용성 선사께서 답처(答處)를 점검하고 내려갔다면 금상첨화로 더없이 빛났을 것이기에 산승에게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답하기를,
“사자(獅子)가 선릉 사자후를 하셨습니다”라고 답하니,
“아주 멋진 점검을 하는구나!”하며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만공(滿空) 선사께서는 수덕사(修德寺)에서 멋진회상을 열어서 제방의 수좌들을 제접하셨는데, 하루는 초가을에 수좌들과 마루에서 좌담을 나누는 차제에 처마 끝에서 새가 한 마리 푸울 날아가는 것을 보시고 수좌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저 새가 하루에 몇 리를 날아가는고?”
이렇게 멋진 일구를 던지시니 아무도 말이 없었는데, 그 가운데 만공 선사의 아끼던 제자 보월(寶月) 스님이 답했습니다.
“촌보(寸步)도 처마를 여의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니, 이에 만공 선사께서는 과연 명답을 했다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이렇게 기틀에 다다라 척척 바른 답이 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공 선사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보월 선사에게 법을 전하고자 했으나 보월 선사가 일찍 입적(入寂)하니, 훗날 금오(金烏) 선사를 보월 선사의 제자로 봉(封)해 그 법을 잇게 하셨습니다.

만공 선사께서 열반에 드신 후로 오랫동안 산중의 조실자리가 비어 있으니, 한 때 고봉(古峰) 선사를 조실로 모시고자 하여 처음 법상에 모시는데 고봉 선사께서 일어나서 법상에 오르려는 차제에 문득 대중 가운데서 금오 선사가 따라 나와 고봉 선사의 장삼자락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스님,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말씀 이르십시오.”
그러자 고봉 선사께서는,
“장삼자락 놔라” 하셨습니다. 금오 선사가 다시 묻기를,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하니, 또다시 “장삼자락 놔라.”
한 마디 이르고 올라가라 하면, 거기서 우물쭈물할 것 없이 석화전광으로 한 마디 척 이르면 되는데 어째서 그러지 못하느냐, 그것은 당당한 안목(眼目)이 열리지 않은 데에 허물이 있는 것이라, 이 법담(法談)이라는 것은 돌사람도 땀을 흘리고 쇠사람도 땀을 흘린다 했으니 임기응변에 척척 바른 답이 나오기란 천고(千古)에 귀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에는 법신의 진리, 여래선의 진리, 향상의 최고의 진리가 있는데, 이는 향상의 정안(正眼)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향상의 일구의 진리를 투과한 자는 천불 만조사(千佛萬祖師)가 나온다 하더라도 당당한 것이니, 이것이 호왈 견성(號曰見性)이요, 모든 불조(佛祖)가 면밀히 법을 전한 바탕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눈을 갖추지 못하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40여 년 전에 향곡 선사께서 이 일화를 들어 산승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만약 당시에 고봉 선사였다면, 금오 선사가 장삼자락을 붙잡고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마디 이르고 오르라 하면 무어라 하겠느냐?” 하시니, 산승이 문득 벽력같은 ‘할(喝)’을 하였습니다.
“어억[喝]!” 이게 ‘할’입니다. 이렇게‘할’을 하자 향곡 선사께서,
“네가 그러할진대 부산시민의 눈을 다 멀게 하여 가리라” 하셨습니다. 눈 밝은 선지식이 아니면 이렇게 바르게 점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소승(小僧)의 허물입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노승(老僧)의 허물이니라” 하셨습니다.

남방(南方)과 북방(北方)의 선의 안목의 세계는 이같이 천지현격(天地懸隔)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무사자오(無師自悟), 즉 스승 없이 깨달았다 하는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다”라고 가풍(家風)을 세워 놓으셨으니,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 허공보다도 넓은 진리의 세계를 다 보지 못하고 동쪽 한 면만 보고 시방(十方)을 다 보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야만 금생에 이 일을 다 해 마칠 수 있는 것이지, 그러지 못하면 몇생을 그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눈 밝은 선지식으로부터 인증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를 설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니, 만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향곡 선사 회상에서 산승이 ‘香嚴上樹話(향엄상수화)’ 화두를 들고 2년 5개월간 씨름해 해결하니 모든 법문에 막힘없이 답이 척척 나왔습니다. 오직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라는 마조(馬祖) 도인의 법문에 막혀서 또다시 씨름을 했습니다. 5년 만에 화두를 해결해 오도송(悟道頌)을 읊으니,

     한 주장자를 휘둘러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정상을 거꾸러뜨리고(一棒打倒毘盧頂)
     벽력 같은 ‘할’로써 천만갈등을 다 문대버림이로다(一喝抹却千萬則)
     두 칸 띠암자에 다리를 펴고 누웠으니(二間茅庵伸脚臥)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海上淸風萬古新).

산승이 깨달은 바를 이렇게 글로 써서 향곡 선사께 올리니 “임제(臨濟)의 가풍이 여기에 다 있구나” 하시면서 법을 전하시었습니다.

향곡 선사께서는 기장 월내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선원을 개설해 머무르시면서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종풍(宗風)을 크게 선양하셨습니다. 정미년(1967) 하안거 해제법회시에 향곡 선사께서 법문을 내리시기 위해 법상에 올라 좌정해 계시는데, 산승이 나아가 삼배를 올리고 여쭸습니다.
“선사께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모든 불조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모든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심오한 진리의 한 마디를 일러 주십시오.” 그러자 향곡 선사께서,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니라” 하시니, 산승이 다시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진리입니다.” 라고 답하니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산승이 가타부타하지 않고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오늘 법문은 다해 마쳤다” 하시며 아무 말 없이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음 날 산승이 다시 위의를 갖추어서 조실방에 찾아가 묻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눈입니까?” 하니, 향곡 선사께서 답하시기를,
“나이 많은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師姑元來女人做)”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산승이
“금일에야 비로소 선사님을 친견했습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시기를.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이에 산승이
“빗장 관자, 關(관)!” 이렇게 답하니,
“옳고, 옳다!” 하시고, 전법게를 내리셨습니다. 당시 산승의 나이가 33세였습니다.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니(付眞際法遠丈室)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佛祖大活句)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나니(無傳亦無受)
     이제 그대에게 최고의 산 진리를 전하노니(今付活句時)
     만인 앞에 진리의 전(廛)을 펴거나 거두거나 그대에게 맡기노라(收放任自在).

이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풍입니다. 향곡 선사께서 열반 직전 4일 전에 제방을 돌아다니시면서 고준한 법문 하나를 들어 물으셨는데,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이은 중국의 대선지식인 임제 도인의‘탁발화(托鉢話)’법문이었습니다.

임제 선사께서 하루는 탁발하기 위해 어느 집 대문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니, 한 노보살이 문을 열고는 물었습니다.
“어찌 왔느냐?” 그러자 임제 선사께서
“탁발하러 왔습니다” 하시니, 노파가 문득 말하기를
“염치없는 중이로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임제 선사께서
“한 푼의 시줏물도 주지 않고 어째서 염치없다 하는고?” 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노보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왈카닥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임제 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않고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 법문을 들어서 그 당시에 제방의 조실들을 찾아가서
“그대가 만약 임제 선사가 되었다면 노보살이 대문을 왈카닥 닫고 들어갈 때에 뭐라고 한마디 하겠느냐?” 하고 물으셨는데, 제대로 답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한 조실스님이
“옛 도인들이 이 법문에 대해서 평을 하고 점검한 일이 없다!” 하시니, 향곡 선사께서
“고인(古人)들은 한 바가 없지만 한 마디 해 보라면 척 나와야 될 거 아닌가?” 하고 다그치니, 그때 가서야 한 마디 나왔습니다.
당시에 산승이 부산 해운정사 마당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향곡 선사께서 들어오셔서 산승을 보자마자 ‘임제탁발화(臨濟托鉢話)’ 법문을 들어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당시에 임제 선사가 되었던들 노보살이 대문을 왈카닥 닫고 들어갈 때에 뭐라고 한 마디 하겠느냐?”하고 마당에 서서 물으셨습니다. 들어가서 인사도 받고 물으셔도 될 것인데, 제방 조실스님들의 안목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즉시 답하기를,

     “30여 년 간 말을 타고 희롱해 왔더니(三十年來弄馬騎)
     금일에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음입니다(今日却被驢子撲)."

하니, 선사께서 산승의 손을 붙잡으면서 “과연 나의 제자로다!” 하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선사께서 임종하시기 4일 전의 문답이었습니다. 이때 산승의 나이가 46세였습니다. 향곡 선사께서는 산승에게 “진제(眞際, 산승)는 과거 전생에 이 법정(法庭)에서 많이 놀았던 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남전(南泉) 도인 회상에서는 항시 700여 대중이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동쪽 선방 대중과, 서쪽 선방 대중이 서로 자기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시비가 분분했습니다.
남전 도인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는 대중을 모두 법당에 모아놓고 시자에게, “고양이를 잡아오고 칼을 가져오너라!”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는 고양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들으시고 “동쪽과 서쪽 선방 대중들이 이 고양이를 두고 서로 자기 고양이라 하니, 금일에 이 고양이에 대해서 분명히 이르는 자가 있으면 이 고양이를 살려 두거니와, 분명히 이르는 자가 없을 것 같으면 고양이를 두 동강이 내리라” 하시고는, “일러라! 일러라! 일러라!”세 번을 물으시는데, 법당에 모인 700여 대중이 다 꿀 먹은 벙어리라, 남전 도인께서 이르라는 그 뜻을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남전 도인께서 약속과 같이 칼로 고양이를 두 동강이 내어 던져 버리고는 당신 방으로 돌아가 쉬고 계시는데, 밖에 볼일을 보러 나갔던 상수제자 조주(趙州) 스님이 돌아오니, 오전의 일을 들어 물으셨습니다.
“오전에 이러한 고양이 법문이 있었는데, 그대가 만일 그 대중 석상에 참여했던들, 무어라고 한 마디 하려는고?” 하시니, 조주 스님은 머리에 신짝을 이고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습니다. 이에 남전 도인께서,
“조주가 당시 있었던들, 고양이를 살렸을 것이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법문을 들어 금오 선사께서는 산승에게 “신짝 이고 나가는 것을 어떻게 보는고?” 하고 물으시니, 산승이 즉시 답하기를,

     “태평세월은 원래로 장군으로 만연하여 태평세월이 이루어짐이나(太平本始將軍致)
     장군이 태평세월을 보고 있는 것을 허락지 아니함입니다(不許將軍見太平)”

하니, 금오 선사께서 멋진 답을 했다고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여기 모인 모든 대중여러분,
화두일념(話頭一念)만 지속이 되면 그 깨닫는 과정은 찰나인 것이니,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세상사에 정신없이 세월만 낭비하지 말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참나’를 찾는 화두와 씨름해서 대오견성으로 천불 만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장부(大丈夫)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필경(畢竟)에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과의 밝은 구슬은 하늘과 땅에 빛남이요.(一顆明珠輝乾坤)
     백 번이나 단련된 진금은 색이 영원토록 변치 않음이로다(百鍊眞金色不變).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정리=조동섭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2011.01.01] 모든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평화위해 합심할 때 [서울신문]
[2010.08.21] 동국대 간화선 국제학술세미나 회향법어 전문 [불교신문]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hompy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