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선도량 해운정사 - 언론보도 :::
Home > 관련 기사

  
 해운정사(2011-01-24 09:40:00, Hit : 5355
 [2011.01.12] 진제대선사-폴니터교수 종교간의 대화 [현대불교]


* 진제대선사-폴니터교수 대담 --> http://www.seon.or.kr/news/20110112(3).pdf

* 진제대선사 인터뷰 --> http://www.seon.or.kr/news/20110112(5).pdf

* 폴니터교수-동화사 수좌스님들 대담 --> http://www.seon.or.kr/news/20110112(7).pdf

* 국제선센터 종교간의 대화 --> http://www.seon.or.kr/news/20110112(8).pdf

* 폴니터 교수 인터뷰 --> http://www.seon.or.kr/news/20110112(9).pdf

---------------------------------------------------

* 기사내용

“71세인 내게도 깨달을 시간이 있습니까?”  

대구 동화사서 선사와 신학자 만나다

진제 스님이 신학자 폴 니터 교수를 만났다.
스님이 말했다. "동화사 염화실에는 태산이 가려가지고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도 산승을 친견하지 못하니, 폴 니터 교수님은 태산철벽이 가려져 있는데 어느 곳에서 산승을 보렵니까?"
(선문답이었지만 이를 알지 못한) 폴 니터 교수는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함께 배우고 조화롭게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상부상조하자"고 말해 자신의 소견만을 밝혔다.
진제스님은 "선은 신앙의 대상이 아닌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법" 이라며 폴 니터 교수에게 법명을 지어줬다.
"진아(眞我)' 참 나를 찾으라는 뜻에서 내린 불명이었다. 선사와 신학자의 사제의 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불교와 개신교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개신교의 ‘땅밟기’가 있었던 대구 동화사에서 선사와 신학자가 만나 종교간 화합과 평화를 말했다.

조계종(총무원장 자승)은 구랍 31일~1월 5일 대구 동화사, 부산 해운정사 등에서 ‘가슴을 열어 빛을 보다’를 주제로 2011년 초조대장경 천년, 밀레니엄 평화토크를 개최했다.

행사 첫날인 31일 대구 동화사 설법전에서는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지식인 진제 스님(동화사 조실)과 세계적인 신학자인 폴 니터 교수(美 유니온 신학대)의 대담이 진행됐다. 폴 니터 교수는 비교종교학자이다. 종교학계에서는 다원주의 신학의 일인자로 평가 받는다.

니터 교수는 “한국은 현재 남북간 긴장과 불교·기독교간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점으로 알고 있다. 최근 범어사·동화사에서 무례한 사건(땅밟기)을 저지른 그리스도인을 대신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이 사죄한다”며 말을 꺼냈다.

니터 교수는 “종교간 평화 없이 나라간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종교간 대화 없이 종교간 평화는 없다.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이 자리가 불교-개신교간 이해와 화합을 넘어 남북 대화의 물꼬를 틀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마음을 모아 인류 평화·행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라며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모든 종교가 머리를 맞대고 모든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 있다. 이것이 종교인의 책임이자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 평화·정의 실천에 불교적 수행이 도움

폴 니터 교수는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정의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터 교수는 “1980년대부터 부인 캐서린 코넬 여사와 엘살바도르에서 평화와 정의 활동을 펼치면서 우리 스스로 평화로워져야 함을 깨달았다. 이 평화는 주변의 불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평화로움에 불교의 명상이 큰 도움이 됐다. 기독교의 평화·정의 실천을 위해서는 불교의 명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궁극적 실재’ = ‘참 나’

폴 니터 교수는 1962~1966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던 때, 로마에서 신학을 배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다른 종교에도 하나님이 계시며,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획기적인 교리가 소개됐다. 그는 그 후 다른 종교와의 대화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믿게 됐다.

폴 니터 교수는 “우리가 하나님이라 부르는 궁극적 실재가 예수를 통해 이 땅에 나타났다는 기존의 입장과 다르게, 나는 그 궁극적 실재가 여러 모습으로 여러 종교에서 나타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제 스님은 “모든 종교는 인간을 진리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데 요점이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불교는 ‘참 나(眞我)’ 가운데 우주의 진리가 모두 있다고 말한다. 개개인이 ‘참 나’를 갖추고는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할 뿐이다” 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사람 사람마다 갖춰진 ‘참 나’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이 ‘참 나’의 근원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당부했다. “모든 인류는 일상생활 속에서 ‘참 나’를 발견하는 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스님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내 모습을 살피는 화두,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을 그 방법으로 소개했다.

폴 니터 교수는 “불교에서 우리 안에 ‘참 나’가 있다고 말하듯 기독교에서는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폴 니터 교수는 30년 전부터 매일 명상을 해왔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고민을 불교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라고 말했다. 자신의 저서 <부처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그 이유에서 집필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보리·교화 = 구원·해방

폴 니터 교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참 나’[성령]을 찾고, 어떻게 평화를 얻을 것인가를 불자들로부터 명상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면서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고자 노력하는 것과 동시에 세상을 바로잡는 구조적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는, 자아완성을 중요시 여긴다. 이는 간화선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폴 니터 교수는 “내가 들어 앉아 수행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아이들이 죽고,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스님은 “불교에는 하화중생하는 보현행과 상구보리로 통하는 문수행이 있다. 이는 수레를 이루는 두 바퀴와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내 눈이 어두우면서 중생을 밝은 곳으로 인도할 수 없으니 ‘자기를 바로 봄’을 먼저 해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 “깨달음은 간절함에 달렸다”

폴 니터 교수는 대담에 앞서 진제 스님으로부터 ‘진아(眞我)’ 라는 법명을 받았다. 니터 교수는 “진제 스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년간 용맹정진을 했다. 하지만 나는 71세이다. 내게 깨달을 때까지 시간이 있겠는가?” 라고 물었다.

스님은 “깨달음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다.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 오직 간절함에 달렸다” 고 말했다.

# "눈사람도 성불을?"

대담 이튿날, 진제 스님과 폴 니터 교수가 동화사 도량을 거닐었다. 법당 앞 누각 밑에 눈사람 세 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니터 교수가 물었다. "저 눈사람도 성불했습니까?"

진제 스님이 답했다. "진묵겁전(塵墨劫前: 아주 오래 전)에 성불했느니라."

후에 진제 스님이 이를 평하기를, "(폴 니터 교수는) 물음을 물을 줄 안다. 참선에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글=조동섭 기자 cetana@gmail.com
사진=박재완 기자 wanihdb@hanmail.net

------------------------------------------------------

[밀레니엄토크] 한국불교대표 선지식 진제 스님(동화사 조실)  

“간화선, 자꾸 접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  

“폴 니터 교수님께서 수만 리 먼 길을 오셔서, 한국 간화선을 잘 배워 세계 속에 동양 정신문화를 널리 홍보하시기를 바라는 뜻에서 불명 '진아(眞我)'를 선사합니다. 동양 정신문화의 골수인 선법을 온 세계에 굴려서 세계가 태평하고, 만민이 태평의 노래를 부르고, 초목이 수려함이로다.”
구랍 31일 대구 동화사 염화실에서 진제 스님은 경허-혜월-운봉-향곡으로 이어져온 법을 미국인 가톨릭 신학자 폴 니터에게 전했다.

1월 2일 폴 니터 교수는 “진제 스님은 이제 나의 스승이다. 저에게 ‘진아’라는 불명을 주었고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라는 화두도 주셨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 생각을 했는데 처음으로 화두에 대해 대답해 보고 싶다” 며 진제 스님에게 점검을 자청했다.
진제 스님은 니터 교수의 대답에 방(棒)과 할(喝) 대신 박장대소했다. “생각을 놓고 간절히 간절히 일념이 지속 돼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일념 상태에서 모든 보고 듣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삼매에 들어야 함을 명심하십시오” 라 일렀다.

진제 스님은 참선은 종교가 아님을 강조한다. 참선은 지혜를 계발하고 안락국토에 이르는 대자유를 얻는 수행법일 뿐이다.
“한국의 간화선은 정신문화의 축입니다. 전쟁, 시기, 질투, 시비에서 전쟁과 갈등, 싸움이 벌어집니다. 모든 사람이 생활 속에 참나를 밝히는 선 수행을 꾸준히 연마하면 갈등의 원인은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나만 위대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없어집니다. 동양정신의 근본인 참선이 마음을 밝혀 지혜와 자비로움이 가득하면 모든 세상과 인류가 한 집이고 한 몸이 됩니다.”
스님은 선의 생활화ㆍ세계화를 서원해왔다. 세계불전전산화협의회 후원자로 한국 선불교의 보급을 위해 꾸준히 활동했다. 그럼에도 스님은 해외에서의 활동은 거의 없었다. 특히 외국인을 직접 지도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제 스님은 폴 니터 교수에게 한국의 간화선을 전하게 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주 좋은 학자를 만났습니다. 저 분은 기독교 신학자이지만 마음은 불교인입니다.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선(禪)을 궁구하고 있습니다. 첫 날 가르쳐준 간화선을 철저히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귀가 따갑도록 바른 참선법과 화두 챙기는 법을 일러줬거든요. 아마 서서히 할 겁니다. 한국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점검을 받으려고 하더군요. 열정이 보통이 아니에요.”
진제 스님은 니터 교수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만남을 기뻐했다. 진제 스님의 말을 듣던 폴 니터 교수는 “스님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말하는 목소리 톤을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다” 고 말했다. 진제 스님과 폴 니터 교수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제 스님은 이번 만남을 계기로 간화선의 세계화에 한발 성큼 다가가게 됐다. 특히 진제 스님은 퓨전식 간화선이 아니라 한국식 간화선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터 교수가 다리를 틀고 앉아서하는 좌선을 어려워하고, 화두공안을 드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밝혔지만 스님의 뜻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한국 참구법이 제일입니다. 견성을 하고 바른 눈을 갖추려면 한국식으로 세계에 유포해야 합니다. 선문답이나 화두를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것도 처음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꾸 접하다 보면 다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지식의 법문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됩니다. 업장 소멸은 물론이고 견성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됩니다.”
사실 화두참구를 어려워하고, 좌선을 하는 동안 무릎이 아픈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행자 모두가 겪어왔다. 스님은 한국 선수행의 참맛을 전하는 것이 목표다.

“산승의 목표는 선이 세계화 되고, 바른 참선으로 진리의 눈을 갖춘 이들이 나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야 부처님 법이 천추만대에 흘러가지요.”
이번에 이뤄진 종교간 대화는 공식적인 일정 외에도 언론사들의 인터뷰가 끝없이 진행됐다. 모든 대담과 법문을 영어로 번역해 책을 편찬할 계획이다.
“폴 니터 교수가 몇 번을 미국에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동양의 정신세계를 온 세계에 알린다면 투쟁도 다툼도 없는 세계가 될 것이라며 초대했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제가 몇 번이고 갈 생각입니다. 또한 앞으로 해운정사에 초대를 해서 대화를 나누고, 좋은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니터 교수는 스님을 뉴욕 유니언 신학대에 초대했다. 또 신학생들과 함께 해운정사에서 하안거에 동참하는 등 불교문화를 체험하며 대화를 이어갈 계획이다.

진제 스님은 남북의 팽팽한 긴장과 종교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고자 폴 니터 교수를 초청했다. 스님은 “세상의 갈등을 풀어나가는데 종교지도자들의 역할과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라며 “종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불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주 만나 머리를 맞대고 평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라고 설명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편협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남의 종교를 말살시키고, 지배하라는 가르침을 전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가르쳤다면 자격이 없는 사람이죠.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사랑은 똑같습니다. 앞으로 종교인들은 자주 만나 어리석은 마음을 송두리째 녹이는 교화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수행을 서로 연마하고 닦아 행하면 개신교나 불교나 동심일체(同心一體)가 됩니다. 세계는 자연히 안락국토가 되고 투쟁이 없는 세계가 되는 것이죠.”

스님은 그동안 개신교의 봉은사ㆍ동화사 땅 밟기,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불교 폄훼 동영상 배포,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 등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스님은 “기독교 신자들 스스로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자기 종교를 매몰하는 것이다” 고 꼬집었다.

스님은 종교의 바른 자세도 강조했다. 스님은 “종교인들이 세(勢)를 확장한다는 것은 우스운 중생심” 이라고 지적했다. 진정한 수행자이고 기독교인이라면 모든 이를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종교라는 것은 순수하게 자기 계발을 통해 모든 인류를 안락국토로 인도해 동거동락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허세는 아무 소용도 없거든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고 불교인이 된다고 해도 내실이 없으면 값어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종교인은 내면 세계의 수양을 위주로 하루하루 살아가서 사바세계가 극락세계가 되도록 초점을 맞춰야 하지 힘만 과시하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요.”
새해 벽두. 진제 스님은 이웃종교인과의 만남을 통해 종교화합의 열쇠를 제시했다.
신묘년 새해 스님은 “2011년에는 종교ㆍ정치인 등 모든 국민이 바라는 것이니 종교간 화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진제 스님 수행담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진재 스님은 20살에 출가했다. 농사를 지으며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1954년 오촌 당숙을 따라 해인사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만난 조계종 초대 종정 석우 스님은 진제 스님에게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셈치고 도를 한번 닦아보는 게 어떻겠는가?” 라고 했다.
“도를 닦으면 어떻게 됩니까?”
“범부가 위대한 부처가 되네.”
진제 스님은 이 말에 감화돼 “위대한 부처가 되는 법이 있다는데 중놀이를 해도 되겠습니까?” 라며 부모와 상의한 뒤 행장을 꾸렸다.
스님은 ‘참선을 해서 도를 깨쳐야겠다.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출가생활을 했다. 26살 스님은 성철 스님이 있는 팔공산 파계사를 찾았다. 점검을 받기 위해서였다. 성철 스님은 “나는 몰라, 나는 몰라” 하며 응대를 하지 않았다. 스님은 향곡 스님을 찾아갔다.
“일러도 삼십 방이요, 이르지 못해도 삼십 방이다.”
진리의 바른 답을 해도 삼십 방을 맞고 못해도 삼십 방을 맞는다는 것이다. 바로 답을 못하자 “그것도 척 못 나오면서 뭘 알았다고 하느냐?” 라며 쫓아냈다.
진제 스님은 오대산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다 ‘일생을 이렇게 허송세월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향곡 스님을 다시 찾아가 화두를 내려달라고 했다.
“중국 향엄 선사가 법문하기를, 높은 나무에 입으로 가지를 물고 매달려 있을 때 밑에 지나가는 이가 ‘달마 스님이 서역에서 중국으로 오신 까닭이 무엇인고?’ 하고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하려는가?”
진제 스님은 이 화두를 해결하는데 2년 5개월이 걸렸다. 향곡 스님은 다른 화두를 내렸다.
“모든 부처님과 성인이 알지 못하는 심오한 일구를 일러주십시오.”
“99는 81이니라.”
“그것은 모든 부처님과 성인이 다 아신 진리입니다.”
“66은 36이니라.”
진제 스님은  더 이상 답변을 하지 않고 큰 절을 하고 법당을 나섰다. 향곡 스님은 그제서 “오늘 법문은 이걸로 끝이다”고 했다.
스님은 1967년 향곡 스님에게 법을 인가받았다. 당시 향곡 스님과의 선문답이다.
“부처의 눈과 지혜의 눈(慧眼)은 묻지 아니하거니와 납승(衲僧)의 눈은 어떤 것입니까?”
“사고원래여인주(師姑元來女人做: 나이 많은 비구니는 원래 여자가 한다).”
"금일에야 선사님을 바로 봤습니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봤느냐?”
“관(關: 빗장)!”
“옳고, 옳다!”
스님은 향곡 스님에게 인가를 받은 후 1971년 부산 해운대 근처에 해운정사를 창건해 참선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 1994년에는 동화사 금당선원의 조실을 맡아 참선도량의 선풍을 다시 일으켰다.

글=이상언, 이나은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2012.11.08] 동화사가 총림으로 지정됐다.[연합뉴스]
[1996.12.24] 진제스님-랭카스터교수 대담 전문 [불교신문]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hompy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