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진리의 법은 개개인이 다 갖고 있는

'참나'를 찾음으로써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진제법원 대종사 동국대 국제학술세미나 회향법문 '향상의 정맥'
 

진제스님

동국대 학술원이 지난 13일 동국대에서 개최한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조계종 원로의원 진제스님은 '향상의 정맥'을 주제로 법문했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지난 13일 동국대에서 ‘간화선 세계를 비추다’를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 미국 일본의 불교학자, 선사들이 참석해 간화선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본지 제2648호 참조) 1000여 년 전 중국에서 발원했지만 한국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는 간화선을 주제로 국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적 석학이 참석한 가운데 조계종 원로의원 진제스님(동화사 조실)이 회향법문을 했다. 주제는 ‘The True Lineage of The Supreme Vehicle’ (향상(向上)의 정맥(正脈))이다. 독자들을 위해 스님의 법문을 전재(全載)한다.

 

실다운 간화선 참구는 법에 대한 간절한 의심 가리켜

선지식으로부터 참된 화두 받아 지니는 것 우선돼야

 

(上堂하시어 柱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這箇柱杖幾人會(자개주장기인회)아

三世諸聖總不識(삼세제성총불식)이라.

一條柱杖化金龍(일조주장화금룡)하야

應化無邊任自在(응화무변임자재)로다.

 

방금 들어 보인 이 주장자 이 진리, 몇 사람이나 알꼬.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성인들도 다 알지 못함이로다.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빛 용으로 화해서

한량없는 용의 조화를 마음대로 부림이로다.

 

용은 영물이라서 태산을 떠오기도 하고 태산을 없애기도 하고, 구름을 띄워서 비를 내리기도 하고 걷기도 합니다. 이 주장자의 참 진리를 알면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전(廛)을 펴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고, 만 사람에게 주기도 빼앗기도 하며,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자재의 수완을 갖춘다는 말입니다.

산승이 27세 때 화두를 타파하여 이렇게 게송으로 글을 써서 올리니, 향곡(香谷)선사께서 이 게송을 보시고는 전구(前句)는 묻지 아니하고, 후구(後句)를 들어서 대뜸 물으셨습니다.

‘這箇柱杖幾人會 三世諸聖總不識’ 이 구절이 전구가 되고, ‘一條柱杖化金龍 應化無邊任自在’하는 구절이 후구가 되는데 이 뒷구절을 들어서 대뜸 물으신 것입니다.

“너 문득 용 잡아먹는 금시조(金翅鳥)를 만나서는 어떻게 하려는고?”

여기에는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즉시 답하기를,

“屈節當胸(굴절당흉)하고 退身三步(퇴신삼보)입니다.

몸을 굽히고 당황하여 몸을 세 걸음 물러갑니다.” 이렇게 답하니, 향곡선사께서

“옳고, 옳다!” 하시었습니다.


금차 이틀 동안 불조의 혜명(慧命)이 이어져 내려온 선불교(禪佛敎)의 중심도량인 이곳 대한민국, 불교학의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동국대학교에서 국내.국외의 세계적인 석학 분들을 초청하여 최상승(最上乘)의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을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산승이 이번 학술발표들을 잘 살펴보니, 참으로 뜻있는 내용들이라,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실참수행법인 선수행의 사상과 역사를 참으로 여실히 잘 밝혀내었다고 봅니다. 그러니 그 공덕(功德)이 참으로 크고 길이 남을 자취가 됨이라, 그 기쁘고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금일(今日)은 산승이 간화선을 실답게 참구(參究)하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드릴 터이니, 여기 모인 모든 분들께서는 잘 경청하여 받아가져서 일생의 귀한 자산이 되고 나아가 대오견성(大悟見性)하여 자기의 ‘참나’를 밝히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간화선을 실답게 참구하는 방법은 부처님의 진리의 법(法)에 대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실다운 의심(疑心)으로 일념(一念)에 드는 것입니다. 진리의 법에 대한 실다운 의심이란, 부처님의 진리의 법을 확연히 깨친 선지식(善知識)이 던진 진리의 법에 대한 물음에 갖는 간절한 의심을 말하는 것이니, 무엇보다도 선지식으로부터 참된 화두(話頭)를 받아 지녀야 됩니다.

부처님의 진리의 법은 인인개개인이 다 가지고 있는 ‘참나’를 찾음으로써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참나’는 모든 유정(有情)들이 명(命)을 세우는 곳이요, 무시무종 변치 않고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으니, ‘참나’를 찾는 것이 가장 좋은 화두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산승이 여기 모인 모든 분들에게 화두를 드릴 터이니, 화두가 있는 분은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분들은,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어서 오매불망 간절히 의심하고 씨름해서 가고 오고 일하고 산책하고 하루하루 생활하는 그 가운데 흐르는 물과 같이 화두가 끊어지지 않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화두일념(話頭一念)이 도래하지 않으면 깨달을 분(分)이 없습니다. 한강의 모래알 숫자와 같은 무한한 전생에 중생의 습기(習氣)만 익혀왔기 때문에 설사 출가인연(出家因緣)을 맺었다 할지라도 사사시주(四事施主)의 은혜를 녹일 수가 없고, 생사안두(生死岸頭)에 다다라 자유의 분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중생의 업식(業識)과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화두일념이 되어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쭈욱 흐르다가 무르익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는 앉고 서고 눕고 보고 듣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모르게 되니,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흐르고 흐르다가 홀연히 사물을 보는 찰나에 소리를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힘이 솟구치게 되는 법입니다. 그 힘에 모든 삼생의 업이 다 소멸되고 부처님과 같은 밝은 눈을 갖추어서 너도 도인(道人)이요 나도 부처가 되는 법입니다.

이러한 진리의 법을 깨닫는 이치는 오직 부처님 법에 있지 다른 종교나 가르침에는 있질 않습니다. 다른 종교는 그저 어린아이들의 울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니, 모든 분들이 대오견성할 수 있도록 정진에 정진을 더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70~80여 년 전에 양주 망월사(望月寺)에서 30년 결사를 하자하여 전국에서 발심한 스님네들이 다 모여들어 참으로 실답게 수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용성(龍城)선사를 조실(祖室)로 모시고, 현 대한불교조계종의 초대종정이셨던 석우(石友)선사를 선덕(禪德)으로 모시고, 혜월(慧月)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운봉(雲峰)스님을 입승(立繩)으로 하여 여법히 용맹정진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때는 생활이 지극히 궁핍하던 시절이라, 겨울 한철 동안 배추김치 한 가지로 밥을 먹으며 정진에 몰두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반살림이 도래하여 조실이신 용성선사께서 법상에 올라 법문하시기를,

“나의 참 모습은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하고 역대의 모든 도인들도 보지 못함이어니, 모든 대중은 어느 곳에서 나의 참모습을 보려는고?”

이렇게 멋진 일구(一句)를 던지시니, 이 때 운봉스님이 일어나 답하기를,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습니다.”

하고 멋진 일구로써 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용성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즉시 법상에서 내려오셔서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대문을 들어 30여 년 전에 산승의 스승인 향곡선사께서 산승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만약 당시에 용성선사가 되었다면, 운봉선사가 ‘유리독 속에 몸을 감췄다’하고 답을 할 적에 무엇이라고 한마디 하고 내려가겠느냐?”

만일 용성선사께서 답처(答處)를 점검하고 내려갔다면 금상첨화로 더없이 빛났을 것이기에 산승에게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답하기를,

“사자(獅子)가 선릉 사자후를 하셨습니다.” 하니,

“아주 멋진 점검을 하는구나!”

하며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만공(滿空)선사께서는 수덕사(修德寺)에서 멋진 회상을 열어서 제방의 수좌들을 제접하셨는데, 하루는 초가을에 수좌들과 마루에서 좌담을 나누고 있는 차제에 처마 끝에서 새가 한 마리 푸울 날아가는 것을 보시고 수좌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저 새가 하루에 몇 리를 날아가는고?”

이렇게 멋진 일구를 던지시니 아무도 말이 없었는데, 그 가운데 만공선사의 아끼던 제자 보월(普月)스님이 답하였습니다.

“촌보(寸步)도 처마를 여의지 않았습니다.”

하니, 이에 만공선사께서는 과연 명답을 하였다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이렇게 기틀에 다다라 척척 바른 답이 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공선사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보월선사에게 법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보월선사가 일찍 입적(入寂)하니, 훗날 금오(金烏)선사를 보월선사의 제자로 봉(封)하여 그 법을 잇게 하셨습니다.

만공선사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후로 오랫동안 산중의 조실자리가 비어있으니, 한 때 고봉(古峰)선사를 조실로 모시고자 하여 처음 법상에 모시는데 고봉선사께서 일어나서 법상에 오르려는 차제에 문득 대중가운데서 금오선사가 따라 나와 고봉 사의 장삼자락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스님,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말씀 이르십시오.”

그러자 고봉선사께서는 “장삼자락 놔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금오선사가 다시 묻기를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말씀 이르고 오르십시오.” 하니, 또다시 “장삼자락 놔라.”

한 마디 이르고 올라가라 하면, 거기서 우물쭈물할 것 없이 석화전광으로 한 마디 척 이르면 되는데 어째서 그러지 못하느냐, 그것은 당당한 안목(眼目)이 열리지 않은 데에 허물이 있는 것이라, 이 법담(法談)이라는 것은 돌사람도 땀을 흘리고 쇠사람도 땀을 흘린다 하였으니 임기응변에 척척 바른 답이 나오기란 천고(千古)에 귀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에는 법신(法身)의 진리, 여래선(如來禪)의 진리, 향상(向上)의 최고의 진리가 있는데, 이는 ‘향상의 정안(正眼)’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향상의 일구의 진리를 투과(透過)한 자는 천불만조사가 나온다 하더라도 당당한 것이니, 이것이 호활견성(號曰見性)이요, 모든 불조(佛祖)가 면밀히 법을 전한 바탕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눈을 갖추지 못하면 만인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40여 년 전에 향곡선사께서 이 일화를 들어 산승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만약 당시에 고봉선사가 되었다면, 금오선사가 장삼자락을 붙잡고 법상에 오르기 전에 한 마디 이르고 오르라 하면 무어라 하겠느냐?”

하시니, 산승이 문득 벽력같은 ‘할(喝)’을 하였습니다.

“어억(喝)!”

이게 ‘할’입니다. 이렇게 ‘할’을 하자 향곡선사께서,

“네가 그러할진대 부산시민의 눈을 다 멀게 하여가리라.”

하셨습니다. 눈 밝은 선지식이 아니면 이렇게 바르게 점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소승(小僧)의 허물입니다.” 하니, 향곡선사께서

“노승(老僧)의 허물이니라” 하셨습니다.


남방(南方)과 북방(北方)의 선의 안목의 세계는 이와 같이 천지현격(天地懸隔)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사자오(無師自悟), 즉 스승 없이 깨달았다 하는 자는 천마외도(天魔外道)다”라고 가풍(家風)을 세워 놓으셨으니, 광대무변한 진리의 세계, 허공보다도 넓은 진리의 세계를 다 보지 못하고 동(東)쪽 한 면만 보고 시방(十方)을 다 보았다고 말하여서는 안 됩니다.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야만 금생에 이 일을 다 해 마칠 수 있는 것이지, 그러지 못하면 몇 생을 그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눈 밝은 선지식으로부터 인증(印證)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를 설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니, 만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

 

진제스님

 

부처님 견성법에는 남녀노소 차별이 없어

화두일념 지속되면 깨닫는 과정은 찰나이니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참나’ 찾아야…

세상사에 쫓겨 금쪽같은 시간 낭비해선 안 돼

 

향곡선사 회상에서 산승이 ‘향엄상수화(香嚴上樹話)’라는 화두를 들고 2년 5개월간 씨름을 하여 해결하니 모든 법문에 막힘없이 답이 척척 나왔는데, 오직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라는 마조(馬祖)도인의 법문에 막혀서 또다시 5년 동안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5년 만에 해결하여 오도송(悟道頌)을 읊으니,

 

一棒打倒毘盧頂(일봉타도비로정)하고

一喝抹却千萬則(일할말각천만칙)이라.

二間茅庵伸脚臥(이간모암신각와)하니

海上淸風萬古新(해상청풍만고신)이로다.

 

한 주장자를 휘둘러서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정상을 거꾸러뜨리고

벽력같은 ‘할’로써 천만갈등을 다 문대버림이로다

두 칸 띠암자에 다리를 펴고 누웠으니

바다 위 맑은 바람 만년토록 새롭도다.

 

산승이 깨달은 바를 이렇게 글로 써서 향곡선사께 올리니, “임제(臨濟)의 가풍이 여기에 다 있구나” 하시면서 법을 전하셨습니다.


향곡선사께서는 동해안 월내 묘관음사(妙觀音寺)에 선원을 개설하여 머무르시면서 향상일로(向上一路)의 종풍(宗風)을 크게 선양하셨습니다.

정미년(1967년) 하안거 해제법회시에 향곡선사께서 법문을 내리시기 위해 법상에 올라 좌정해 계시는데, 산승이 나아가 예삼배를 올리고 여쭈었습니다.

“선사님께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모든 불조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모든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심오한 진리의 한 마디를 일러 주십시오.”

그러자 향곡선사께서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니라.” 하시니, 산승이 다시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진리입니다.” 하고 답하니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산승이 가타부타하지 않고 예배드리고 물러가니,

“오늘 법문은 다해 마쳤다.”

하시며 아무 말 없이 법상에서 내려와 조실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음 날 산승이 다시 위의를 갖추어서 조실방에 찾아가 묻기를,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눈입니까?”

하니, 향곡선사께서 答하시기를,

“ 師姑元來女人做(사고원래여인주)니라.

나이 많은 비구니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산승이,

“금일에야 비로소 선사님을 친견하였습니다” 하니, 향곡선사께서 물으시기를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이에 산승이

“빗장 관자, 關(관)!” 이렇게 답하니,

“옳고, 옳다!” 하시고

여기에서 법의 인증서인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습니다. 당시 산승의 나이가 33세였습니다.

 

付 眞際法遠 丈室(부 진제법원 장실)

 

佛祖大活句(불조대활구)는

無傳亦無受(무전역무수)라.

今付活句時(금부활구시)에

收放任自在(수방임자재)로다.

 

진제 법원 장실에 부치노니,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나니,

이제 그대에게 최고의 산 진리를 전하노니

만인 앞에 진리의 전(廛)을 펴거나 거두거나 그대에게 맡기노라.

 

이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풍입니다.


향곡선사께서 열반 직전 4일 전에 제방을 돌아다니시면서 고준한 법문 하나를 들어 물으셨는데,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이은 중국의 대선지식인 임제도인의 ‘탁발화(托鉢話)’법문이었습니다.

임제선사께서 하루는 탁발하기 위해 어느 집 대문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니, 한 노보살이 문을 열고는 물었습니다.

“어찌 왔느냐?” 그러자 임제선사께서

“탁발하러 왔습니다” 하시니, 노파가 문득 말하기를,

“염치없는 중이로구나!” 하였습니다. 그러니 임제선사께서

“한 푼의 시줏물도 주지 않고 어째서 염치없다 하는고?” 하셨습니다.

이에 노보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왈카닥 닫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임제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않고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 법문을 들어서 그 당시에 제방의 조실들을 찾아가서

“그대가 만약 임제선사가 되었다면 노보살이 대문을 왈카닥 닫고 들어갈 때에 뭐라고 한마디 하겠느냐?” 하고 물으셨는데, 제대로 답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한 조실스님이

“옛 도인들이 이 법문에 대해서 평을 하고 점검한 일이 없다!” 하시니, 향곡선사께서

“고인(古人)들은 한 바가 없지만 한 마디 해 보라면 척 나와야 될 거 아닌가?”

하고 다그치니, 그때 가서야 한 마디 나왔습니다.

당시에 산승이 부산 해운대 해운정사(海雲精寺) 마당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스승인 향곡선사께서 들어오셔서 산승을 보자마자 ‘임제탁발화(臨濟托鉢話)’ 법문을 들어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당시에 임제선사가 되었던들 노보살이 대문을 왈카닥 닫고 들어갈 때에 뭐라고 한마디 하겠느냐?”

하고 마당에 서서 물으셨습니다. 들어가서 인사도 받고 물으셔도 될 것인데, 제방의 조실스님들의 안목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승이 즉시 답하기를,

 

三十年來弄馬騎(삼십년래농마기)러니

今日却被驢子撲(금일각피려자박)이로다.

삼십여 년 간 말을 타고 희롱해 왔더니

금일에 당나귀에게 크게 받힘을 입음입니다.

 

하니, 선사께서 산승의 손을 붙잡으면서

“과연 나의 제자로다!” 하고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게 임종 4일 전의 문답이었습니다. 이때 산승의 나이가 46세였는데, 그래서 향곡선사께서도 산승을 보고,

“진제(眞際, 산승)는 과거 전생에 이 법정(法庭)에서 많이 놀았던 이다” 하셨습니다.


이러한 불조의 관문에 당해서 척척 답이 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담이라는 것은 돌사람도 땀이 나고 철사람도 땀이 난다 하였으니, 참으로 분명한 정안을 갖추어야사 흉금(胸襟)에서 석화전광(石火電光)으로 답이 나오는 것이요, 요사인(了事人)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과 도인도 일구(一句)의 법문을 던져서 척척 바른 답이 나온 자만이 대접을 했지 막히면 태산이 가려 있는 고로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모인 모든 대중여러분,

바른 법문 한 마디 마음속에 간직하는 여기에 태산과 같은 삼생의 업이 봄바람에 눈 녹듯 다 녹아버리는 것이니, 비로소 마음속에 간직했던 그 법문이 싹이 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사에 쫓겨 금쪽같은 시간만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다겁생으로 만나기 어려운 견성법(見性法)이라, 이번 생에 견성 못하면 이토록 귀한 진리의 법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한 것이니, 부처님의 견성법에는 남녀노소에 차별이 없음이요,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참나’를 찾는 것입니다.

화두일념(話頭一念)만 지속이 되면 그 깨닫는 과정은 찰나인 것이니,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세상사에 정신없이 세월만 낭비하지 말고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화두와 씨름해서 대오견성으로 천불만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장부(大丈夫)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필경(畢竟)에 일구(一句)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一顆明珠輝乾坤(일과명주휘건곤)이요

百鍊眞金色不變(백련진금색불변)이라.

한 과의 밝은 구슬은 하늘과 땅에 빛남이요.

백 번이나 단련된 진금은 색이 영원토록 변치 않음이로다.

 

(柱杖子로 法床을 한 번 치시고 下座하시다.)


출처 : [불교신문 2009년 10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