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차선대법회 법어와 무차선회
-해운정사,불기2546(2002).10.20-


I부. 법어

상당하여 주장자로 한 번 법상을 치시고 이르시기를,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동체(萬物與我同体)로다.

      하늘과 땅은 나와 더불어 뿌리를 같이 함이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이로다.

   설사 이렇다 하여도 진리의 한 관문이 가리어져 있습니다.

주장자를 들어 또 한 번 법상을 치시고 이르시기를,

      춘생하장추수동장(春生夏長秋收冬藏)이로다.
      봄에는 만물이 나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에는 거두고 겨울에는 갈무리함이로다.

   선(禪)사상은 세계 정신문명의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대안사상으로 진지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선문화의 토양이 동서양 문화의 종합적 자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세계 문화를 화해와 융합으로 포용함으로써 인류의 정신문명에 무한한 희망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바탕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지구촌의 진정한 안락과 평화는 사람마다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혜가 증장되는 선 수행을 일상생활화 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 만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바른 참선을 해서 마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혜가 증장해서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바른 참선하는 설법을 하고자 하오니 생각을 다 비우고 잘 받아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람 사람의 몸뚱이는 백 년 이내에 썩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참 나가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산승의 법문을 듣고 있는 주인공의 자체, 그것을 바로 아셔야 됩니다.
   그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일상 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고 오매불망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해서 모든 사량, 분별, 망념이 일어나지 않게끔 간절히 화두를 들어 챙기는 여기에 선의 묘미가 있습니다.
   참선명상법에 가지각색의 방법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른 참선법은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이 화두를 들든가, ‘만 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해가지고 일상생활 가운데 오매불망 의심하고 챙기면 마음의 가지가지의 망상과 번뇌는 없어지고 아주 순수하고 맑은 한 생각만 자나깨나 흘러갑니다.
   그래서 산승은 항시 일상 중에 화두를 챙기는데 있어서 눈 앞에 2미터 앞에다 화두를 두고 의심하면서 챙기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항시 움직이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단전에다 둔다든가 가슴에다 둔다든가 머리에다 둔다든가 하는데 항시 눈 앞에 2미터 앞에다 두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화두가 무르익기가 쉽습니다. 혼침과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간절한 화두를 챙기지 아니해서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날 때는 ‘이 생각을 안해야지’ 하지 마시고 화두만 또록또록 챙기면 스스로 모든 생각은 다 없어지는 법입니다. 화두 참선은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앉고 눕고 목욕하고 일하고 잠자는 그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하는 간절한 한 생각이 흘러가게끔 해야 됩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애쓰다 보면 참의심의 발동이 걸립니다. 참의심이 발동이 걸리면 그때는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듣는 것도 잊어버리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도 모르고 밤이 되어도 밤이 되는 줄도 모릅니다. 이러한 참의심이 지속이 되는 과정이 올 것 같으면 천 사람 만 사람이 다 진리의 눈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야 일천 성인(一千聖人)의 이마 위의 일구(一句)를 투과할 수가 있습니다.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뚫어 지나가지 못하면 죽이고, 살리고, 주고, 빼앗는 이러한 자재의 살림살이를 갖추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 일천 성인의 이마 위의 일구를 투과하는 활구참선을 함으로써 금생(今生)에 견성대오를 할 수가 있는 법입니다. 견성대오를 해야 나고 죽는 즈음에 이르러 자유자재의 수완을 갖추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른 진리의 눈을 깨달은 분은 몸을 천 번, 만 번 받더라 해도 항시 그 깨달은 진리의 눈이 밝아 있습니다.
   이러한 최상의 지혜를 개발하는 이 참선법을 모든 대중은 일상생활 속에 바르게 참구하여 큰 지혜를 증득하여 나고 날 적마다 출세와 복락을 누리소서.

      인빈(人貧)함은 지단(智短)이요, 마수(馬瘦)면 모장(毛長)이로다.
      사람이 빈한하게 삶은 지혜가 짧음이요, 말이 야위면 털이 긺이로다.

   그러면 오늘날 선(禪)을 선(禪)이라 하면 시상가첨(屎上加尖-똥 위에 똥을 더함)이요, 선(禪)을 선(禪)이라 아니하여도 호여삼십봉(好與三十棒-삼십봉을 맞음)이로다.

   여하즉시(如何卽是)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옳으냐?

      대야(大冶)에 정금(精金)이요, 징담(澄潭)에 교월(皎月)이로다.
      쇠를 녹이는 큰 솥에 정미로운 금이요, 맑은 못에 밝은 달이로다.

   중국 당나라 때 조주 선사(趙州禪師)는 십세(十歲) 전에 암자를 찾아가 출가하여 삭발하고 사미승(沙彌僧)이 되었습니다. 암주(庵主) 노승(老僧)이 일생토록 중노릇 잘함을 자부하였는데 그 사미승을 가르쳐보니 지혜가 밝아 노승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유명한 남전(南泉) 대선지식(大善知識)이 계셨습니다. 일일(一日)에 사미승의 지도를 부탁하고자 대선지식인 남전 도인(南泉道人) 처소를 찾아 사미승을 남전 도인 계시는 방으로 인도하니 남전 도인께서,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하고 물으니,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서상원에서 왔을진대 상서로운 상(像)을 보았느냐?”
하니 사미승이 답을 하기를,
   “상서로운 상은 보지 못하였으나 누워 계신 부처님은 보았습니다.”
하니, 남전 도인이 벌떡 일어나 앉으셔서 다시 묻기를,
   “네가 주인이 있는 사미냐, 없는 사미냐?” 하니,
   “유주사미(有主沙彌)입니다. ”
   “어떤 것이 유주사미냐?”
   “선사님, 맹춘유한(孟春猶寒)하니 법체만안(法体萬安)하옵소서.” (선사님, 정월달이 아직 추우니 귀하신 법체 편안히 보존하옵소서.)
   이렇게 사미승이 멋진 답을 하니 남전 도인께서 유나(維那)를 불러,
   “이 사미승을 별원(別院-밝고 깨끗한 방)에 잘 모셔라.”
했습니다.
   대중들이여, 이 사미승의 바른 답이 어디서 이렇게 척척 나왔느냐하면, 부처님의 진리의 견성법(見性法)은 바른 진리의 안목이 열리면 만년토록 밝아있는 것입니다.
   대중은 남전 도인과 사미승의 문답처(問答處)를 알겠습니까?

   양구운(良久云) (조금 있다가)

      문재답처(問在答處)요, 답재문처(答在問處)로다.
      묻는 것은 답하는데 있고, 답은 묻는데 있음이로다.

   당시에 남전 도인 회상에는 육칠백여 명의 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사중(寺中)에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동당, 서당 양쪽 선원의 대중들이 서로 자기네 선원의 고양이라고 주장하여 설왕설래(說往說來) 분분한 시비가 벌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남전 도인께서 시자에게 운집종(雲集鐘)을 치라고 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대중들이 모두 모이자, 남전 도인께서는 법상(法床)에 오르시면서 시자에게 이르셨습니다.
   “고양이와 칼을 가져오너라.”
   시자가 그것들을 가져와 법상 위에 올려놓으니, 남전 도인께서 고양이를 치켜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고양이로 인하여 늘 시비가 생기니, 오늘 이 고양이를 두고 한 마디 바로 이르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고양이를 살려 두겠거니와, 만약 바로 이르지 못하면 단칼에 두 동강을 내버리겠다.”
   “속히 일러라!”

하시며 세 번을 거듭하여 대답을 재촉하였는데도 아무도 이르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 칠백여 명의 대중 가운데 남전 도인의 뜻을 헤아리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남전 도인께서는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고양이를 두 동강 내고는 방장실(方丈室)로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방장실에서 쉬고 계시자, 그동안 출타 중이었던 조주 스님이 돌아와서 인사를 올림에, 남전 도인께서 이 일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라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그러자 조주 스님은 즉시 신발을 머리에 이고 나가 버렸습니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습니까? 남전 도인의 이르라는 뜻은 어디에 있으며, 조주스님이 머리에 신을 이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양구운(良久云) (조금 있다가)

      태평본시장군치(太平本是將軍致)나
      불허장군견태평(不許將軍見太平)이로다.

      태평은 본래 장군이 이르게 하는 것이나
      장군이 태평을 보도록 허락치는 않음이로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 정해년 당시에 문경 봉암사에서 ‘종전에 안 것은 다 덮어두고 대오견성을 하기 위해 용맹정진을 하자’고 해서 청담 선사, 성철 선사, 향곡 선사 세 분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발심한 납자들이 20여 분 모여들어 정진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성철 선사께서 향곡 선사께 말씀하시기를,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바야흐로 산 사람을 봄이요, 죽은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바야흐로 죽은 사람을 본다[殺盡死人 方見活人 活盡死人 方見死人]’ 하는 옛 도인의 법문이 있는데 이 무슨 뜻이냐?”
하니 향곡 선사께서 답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향곡 선사께서 그 화두를 들고 여름 석 달 동안 오매불망 정진을 거듭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정진을 했던지 하루는 폭우가 쏟아졌는데 탑 난간에 기대어 폭우가 쏟아지는 줄도 모르고 화두일념에 푹 빠져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삼칠일 동안을 화두일념삼매에 푹 빠져 자기의 몸뚱이까지도 다 잊어버렸다가, 하루는 도량을 걷는 중에 당신 손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셨습니다.
   오도송을 읊으시기를,

      홀견양수전체활(忽見兩手全體活)하니
      삼세제불안중화(三世諸佛眼中花)로다.
      천경만론시하물(千經萬論是何物)인고
      종차불조총상신(從此佛祖總喪身)이로다.

      홀연히 두 손 보고 전체가 드러나니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이 눈 가운데 꽃이로다.
      일천 경과 만 가지 논문이 이 무슨 물건인고
      부처님과 모든 도인이 이를 좇아 생명을 잃는다.

   이렇게 오도송을 읊은 후에 즉시 성철 선사를 찾아가서,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하여야 바야흐로 산 사람을 봄이요, 산 사람을 살려 다하여야 바야흐로 죽은 사람을 본다’ 하는 법문의 뜻을 네가 물었으니 한 번 일러 보아라!”
하고 향곡 선사께서 성철 선사께 물으니 성철 선사께서 우물쭈물 답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멱살을 잡고 흔들어 놓고는 또 한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위산 도인이라고 하는 천오백 대중에 참선 지도를 한 위대한 선지식이 계셨습니다. 그 가운데 앙산, 향엄이라는 뛰어난 두 분의 제자가 있었는데 매일 아침 위산 도인께 문안인사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상수제자(上首弟子)인 앙산 스님이 문안을 들어오니, 위산 도인께서 누워계시다가 몸을 한 바퀴 돌아누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방금 꿈을 꿨는데 그대가 해몽을 한 번 해보게.”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앙산 스님은 즉시 그릇에 물을 잔뜩 떠다가 위산 도인의 앞에다 놓고는 나갔습니다.
   다음에 향엄 제자가 들어오니 또 종전과 같이 몸을 한 바퀴 돌아누우시면서,
   “내가 방금 꿈을 꿨는데 그대가 해몽을 한 번 해보게.”
했습니다. 이에 향엄 스님은 밖에 나가더니 차를 한 잔 잘 다려서 위산 도인 앞에다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위산 도인께서 일어나 앉아서 웃으시며,
“두 분의 나의 제자가 부처님 당시의 신통제일인 목련 도인의 신통보다 뛰어나구나.”
하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한 분은 해몽을 하라 하는데 그릇에다 물을 잔뜩 떠다 놓고 한 분은 차를 한 잔 정성껏 다려 놓으셨습니다.
   이 대문을 들어 향곡 선사께서 성철 선사께 물으니 명확한 답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멱살을 잡고 절 대문 밖으로 성철 선사를 끌어내시고는,
   “이것을 답을 못하면 절 대문을 들어올 수 없다.”
하고 명을 내리시고는 대문을 닫아버리셨습니다.
   절친한 십 년 도반의 서릿발 같은 명을 순수히 받아들이고는 며칠간 먹고 자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밤낮으로 이 화두와 씨름해서 일념삼매가 지속이 되어 화두가 타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돌멩이를 가지고 절 대문을 치니 온 산이 쩡쩡 울렸습니다. 절 대중들이 공비가 내려온 줄 알고 다 일어났는데 향곡 선사께서 절 대문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일러라!”
하니 성철선사께서 척 답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문을 열어 주고는 두 분이서 춤을 추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이 선의 최고의 안목을 밝히는데 있어서는 이 두 분과 같은 순수한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부처님의 최고의 살림살이를 맛볼 수가 있는 법입니다.
   지금은 두 분 다 고인(故人)이 되셨습니다만 한국 선종사의 안목에 위대한 진일보(進一步)를 이루신 대선사이셨습니다.
 
   청원 행사 선사(淸源行思禪師)는 육조 선사(六祖禪師)의 적자(嫡子)입니다.
   청원 선사 회상(會上)에 수십 년을 좌우에서 시봉하고 정진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 분이 석두(石頭) 스님입니다.
   일일(一日)에 청원 선사가 석두 스님을 불러 서신(書信)을 주시면서,
   “남악 회양 선사(南岳懷讓禪師)께 전하고 오면 무딘 도끼를 주어서 남악산(南嶽山)에 주(住)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석두 스님이 회양 선사 처소에 이르러 회양 선사님께 예삼배(禮三拜)를 올리고 대뜸 묻기를,
   “위로는 제불(諸佛)도 섬기지 않고 자기의 영(靈)도 중요시 여기지 않는 때에 어떠합니까?”
하니 회양 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향상사(向上事-가장 고준한 진리)만 묻고, 어찌 향하사(向下事-향하의 진리)는 묻지 않는고?”
   “수억만 년을 나고 죽는 바다에 잠길지언정 모든 성인의 해탈법(解脫法)은 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석두 스님이 말을 하니 회양 선사께서는 돌아앉으셨습니다. 산승이 만약 당시에 회양 선사가 되었던들 그냥 돌아앉지 않고,
   “고준한 선객이여, 판자를 짊어지고 천하를 다녀보게.” 하겠습니다.
   석두 스님은 그런 즉시 자기 절로 돌아와서 청원 선사에게 이르되,
   “다녀왔습니다.”
하니 청원 선사께서,
   “서신은 잘 전하였느냐?”
함에 석두 스님이 말하되,
   “서신도 전하지 못하고, 신(信)도 통하지 못했습니다. 선사님께서 ‘심부름을 다녀오면 도끼를 주어서 남악산에 머물게 하리라’ 하시었는데, 그 도끼를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이에 청원 선사가 일족(一足)을 드리우니 석두 스님이 예배하였습니다.

   대중들이여!
   "도끼를 주십시오." 하는데 어찌하여 한 발을 드리웠을까? 여기에 분명히 아는 자가 있으면 이 주장자를 두 손으로 부치겠습니다. 청원 선사와 석두 스님을 알겠습니까?

   양구운(良久云) (조금 있다가)

      향상향하자재용(向上向下自在用)하야사
      천상인간무등필(天上人間無等匹)이로다.

      향상의 진리와 향하의 진리를 마음대로 써야사
      하늘세계와 인간세계에 짝할 자 없음이로다.
   
   오늘 법문은 이것으로 마치고 질문자가 있으면 받겠습니다.


II부. 무차선회

【사회자】다음은 선문답(禪問答) 시간입니다. 선문답이란 문답을 통하여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고 또한 스승과 제자간에 깨달음의 경지를 점검하고 이끌어 주는 치열한 구도방식입니다. 언설言說로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참진리인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체득하게 하는 문답입니다. 큰스님 법문 가운데에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누구든지 나와서 선문답 취지에 맞게 질문하여 주십시오.

【질문자 1】
질    문 : 오늘 법회가 무슨 법회입니까?
진제대선사 : 허물이 만 천하에 가득합니다.
질    문 : 개구즉착(開口卽錯)이오. 입을 연즉은 그르쳤습니다. 내려오시오!
진제대선사 : 차나 한 잔 드시오!
질    문 : 내려오시오!
진제대선사 : 억-! (일할一喝 하시다.)
 
【질문자 2】
질    문 : 제가 임제 사빈주(四賓主)에 대해 묻겠습니다. 어떠한 것이 임제 사빈주 가운데 주중주(主中主-주인 가운데 주인)의 도리입니까?
진제대선사 : 구중궁궐리(九中宮闕裏)에 좌(坐)하니 일천 부처님도 보기가 어려움이로다.
질    문 : 어떠한 것이 주중빈(主中賓-주인 가운데 손님)입니까?
진제대선사 : 만리강상(萬里江上-만리나 되는 강 위)에 백구(白鷗-흰 갈매기)가 훨훨 낢이로다.
질    문 : 빈주(賓主-손님과 주인)의 상거(相距-서로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진제대선사 : 명월(明月)이 비치니 청풍(淸風)이 붊이로다.
질    문 : 스님의 수중(手中)에 주장자는 어디로 좇아 왔소?
진제대선사 : 불시(不是-옳지 못함), 불시로다.
질    문 : 필경 그 주장자는 어디에 안심입명(安心立命) 합니까?
진제대선사 : 구구는 팔십일이로다.

【질문자 3】
질    문 : 만약 당시에 선사님께서 조주 스님을 대신하셨다면 남전 스님께서 “상서로운 상像을 봤느냐?” 할 때 뭐라고 한 마디 하시겠습니까?
진제대선사 : 산승이 만약 당시에 조주 사미가 되었던들 동쪽에서 몇 걸음 걸어 서쪽에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몇 걸음 걸어 동쪽에 서리라.
질    문 : 어떠한 것이 향상의 진리입니까?
진제대선사 : 만 리에 기골퇴(起骨堆)라. 백골(白骨-뼈 무더기)이 만 리에 즐비함이로다.
질    문 : 그러면 향하의 진리는 어떤 것입니까?
진제대선사 : 대지(大地)의 산과 물이로다.

【질문자 4】
질    문 : 스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의 소리는 어디에 담았습니까?
진제대선사 : 한 마디도 담은 바가 없소.
질    문 : 그 소리가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대선사 : 한 바가 없는데 온 바가 있겠소?
질    문 : 지금 오고 있는 그 소리는 어디서 오고 있습니까?
진제대선사 : 억-! (일할一喝 하시다.)
질    문 : 끝도 없고 가도 없는 무오광야(無悟廣野)에 시간세월 또한 무량광(無量廣-끝없이 넓음)에 흔적도 없는 나는 무(無)입니다. 소리가 없는 자리에서 소리가 오고 그 소리를 만들어 쓰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만들어 써버리는데, 그 본래 소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진제대선사 : 쿵-!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다.)

【질문자 5】
질    문: 부처와 중생과 마음, 이 셋이 차별이 없다 했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진제대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    문 : 예?
진제대선사 : 차별이 없다 해도 삼십 방을 맞아야 돼.
질    문 : 스님께서 저에게 질문을 해 주십시오.
진제대선사 : 아까 조주 도인께서 머리에 신을 이고 나간 뜻을 한 번 일러 보게.
질    문 : (선사님께 큰 절로써 예삼배를 올리다.)
진제대선사 : 옳지 못하고, 옳지 못해!
(대중 박수)

【사회자】
그러면 질문하실 분들이 많이 계신 걸로 알겠습니다만 다음 기회에 별도로 큰스님께 직접 참예(參詣) 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시고 하좌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