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한국의 선맥 > 혜월 혜명

혜월 혜명(1862~1937) 스님은 12세에 출가하여 글 한 줄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다가, 은사(恩師) 스님의 퇴속(退俗)으로 경허 선사와 인연이 되어서 참선의 관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경허 선사를 찾아가서 "저도 도인이 되고자 하오니 화두를 하나 내려주옵소서." 간청을 하니 경허 선사께서 일러 주시기를,
"사대(四大)는 본래 거짓으로 이루어져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허공도 또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느니라. 다만 눈 앞에 뚜렷이 밝은 한 물건이 있어서 능히 법을 설하고 듣나니, 고명(孤明)한 이 한 물건이 무엇인고?"
하시더니 재차 다그쳐 물으셨습니다.
"알겠느냐? 대체 어느 물건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느냐? 형상은 없되 뚜렷이 밝은 그 한 물건을 일러라!"

혜명 스님은 앞이 캄캄하여 이 순간부터 오로지 이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몰두했습니다.
앉으나 서나 일할 때나 잠잘 때까지도 "대체 이 한 물건이 무엇인가?" 하는 일념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일념에 잠겨 참구하는 가운데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혜명 스님은 짚신 한 켤레를 다 삼아놓고서
그것을 잘 고르기 위해 신골을 치는데, '탁-'하는 그 망치 소리에 이 '한 물건' 의심이 환하게 해소되었습니다.

혜명 스님이 그 길로 경허 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께서 간파하시고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목전(目前)에 고명(孤明)한 한 물건이 무엇인고?"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천성인(一千聖人)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자 경허 선사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어떠한 것이 혜명(慧明)인가?"
이에 혜명 스님은 동쪽에서 걸어 서쪽에 가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걸어 동쪽으로 가 섰습니다. 경허 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옳고, 옳다."
하시며 혜명 스님을 인가(印可)하셨습니다.

그 후 1902년, 경허 선사께서는 혜명 스님에게 혜월(慧月)이라는 법호(法號)와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습니다.


▲ 경허 선사께서 혜월 선사에게 내리신 친필 전법게

     
付慧月慧明 (부혜월혜명) ............ 혜월혜명에게 부치노라

     
了知一切法 (요지일체법) ............ 일체법 깨달아 알면
     
自性無所有 (자성무소유) ............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는 것
     
如是解法性 (여시해법성) ............ 이같이 법성을 깨쳐 알면
     
卽見盧舍那 (즉견노사나) ............ 곧 노사나 부처님을 보리라
     
依世諦倒提唱 (의세제도제창) .... 세상법에 의지해서 그릇 제창하여
     
無文印靑山脚 (무문인청산각) .... 문자 없는 도장에 청산을 새겼으며
     
一關以相塗糊 (일관이상도호) .... 고정된 진리의 상에 풀을 발라 버림이로다

혜월 선사께서는 24세 때 깨달음을 얻으신 후, 27년 동안 덕숭산에 주(住)하시다가 51세 이후로는 남방의 제선방(諸禪房)을
두루 유력(遊歷)하시면서 납자를 제접(提接)하셨습니다.
당시에 선사의 법기틀 쓰심은 "신(申) 혜월 미투리 방망이에 남방 선지식이 다 빙소와해(氷消瓦解)되었다."는
유행어가 생겼을 만큼 독특했습니다.

혜월 선사께서 부산 선암사(仙岩寺)에서 주석하고 계시던 중 1923년에,
운봉 성수 스님이 깨달은 바를 점검받고자 선사를 참방(參訪)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