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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와 참선

화두(話頭)란 '제불조사(諸佛祖師)께서 깨달으신 경계를 만인(萬人)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것'으로
'공안(公案)'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 선사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니 조주 선사가 답하기를,
"없다.[無]"
했습니다.

조주 선사는 "없다.[無]" 라는 말로써 자신의 깨달음의 경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여기서 그 스님이 조주 선사가 '없다.[無]' 라고 한 뜻을 바로 알아 들었으면 그만인데,
불행히도 알아듣지 못하고 꽉 막혔습니다.
'아니!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개도 마땅히 불성이 있는 것인데,
어째서 조주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하는 심각한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스님이 운문(雲門) 선사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니 운문 선사가 답하기를,
"마른 똥막대기니라."
했습니다.

운문 선사는 "마른 똥막대기니라." 라는 말로써 자신의 깨달음의 경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입니다.

여기서 그 스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뚱딴지 같은 대답을 듣고는 심각한 의심에 빠져듭니다.
"아니! 거룩한
부처를 물었는데 어째서 '마른 똥막대기'라 했는고?"

이렇듯 '제불조사(諸佛祖師)께서 드러내 보인 깨달음의 경계'를 바로 알아 듣지 못했을 때는 강렬한 의심이 일어납니다.

"어째서 조주 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혹은,
"부처를 물었는데 어째서 '마른 똥막대기'라 했는고?"


이와 같이 의심해 가는 것을 '화두를 든다', '화두를 참구(參究)한다' 라고 하며,
이렇게 화두를 들고,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법을 '참선(參禪)' 혹은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화두 없이 참선한다는 것은 단순한 명상(瞑想)일 뿐 올바른 참선이 아니며 대오견성(大悟見性)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간화선 수행의 핵심은 '의심(疑心)'으로서, 화두를 통해 참학자(參學者)가 큰 의심을 일으키고,
그 의심의 힘으로 '화두일념삼매(話頭一念三昧)'에 깊이 빠져 모든 의식·분별과 자기 몸뚱이까지도 다 잊었다가
홀연히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자신의 참성품[自性]을 깨닫게 되는데,
다른 수행법은 이러한 힘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화두의 종류

요즘 세간에서는 '화두'라는 말이 '풀어야 할 숙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뜻으로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실제 참선에서 말하는 화두와는 그 뜻이 다릅니다.

화두(話頭)란 모든 부처님과 조사(祖師) 스님들께서 깨달으신 경계를 만인(萬人)에게 드러내 보인 것으로,
약 1700여 개의 공안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이 무엇인고?<시심마(是甚麽)>

* 부모에게 나기전에 어떤것이 참나던고?<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

* 만 가지 진리의 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백천 공안(百千公案)에는 고인(古人)들이 여래선(如來禪:범성凡聖의 차별이 끊어진 견처見處)을 알아서
여래선 도리를 베풀어놓은 것이 있고, 법신변사(法身邊事:시방세계가 청정淸淨하다는 견처)를 알아서 법신의
변사를 베풀어놓은 대문도 있고, 최초구(最初句)·말후구(末後句)를 알아서 그것을 베풀어놓은 것이 있고,
향상구(向上句)·향하구(向下句)를 베풀어놓은 것이 있고, 일구(一句)·이구(二句)·삼구(三句)를 베풀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진리의 최고봉(最高峰)인 향상구가 해결되면 다른 것은 다 자연히 알게 되어 있지만,
최고봉에 올라서기 전이라도 앞에서 열거한 작은 봉우리들에 올라서서 진리의 부분 부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화두 받는 법

임제 스님이 선(禪)에 뜻을 두고 황벽(黃檗) 선사 회상을 찾아가서, 3년 동안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고
참선정진에 전력(全力)을 다 쏟았습니다. 그 회상에 몇백 명 대중이 모여 수행생활을 했지만,
임제 스님과 같이 신심(信心)과 용맹(勇猛)으로 일거일동에 화두와 씨름하는,
그러한 좋은 기틀을 가진 사람이 둘도 없었을 만큼 빈틈없이 정진하였습니다.

당시에 입승(立繩)을 보던 목주(睦州) 스님이 임제 스님을 쭉 지켜보고는 큰 그릇으로 여기고, 하루는 임제 스님을 찾아가서
"그대가 지금까지 열심히 참구(參究)하여 왔으니 이제는 조실 스님께 가서 한번 여쭈어 보게."
하니, 임제 스님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여쭈어야 합니까?"
"불법(佛法)의 가장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를 여쭈어 보게."

임제 스님은 목주 스님이 시키는 대로 조실방에 찾아가 예삼배(禮三拜)를 올리고서 여쭈었습니다.
"스님,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벽 선사께서는 주장자(拄杖子)로 이십 방(棒)을 후려 갈기셨습니다.

임제 스님이 겨우 몸을 이끌고 나와 간병실에서 쉬고 있으니, 목주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갔던가?"
"예,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여쭈었다가 방망이만 흠씬 맞아 전신이 다 부서진 것 같습니다."
"이 대도(大道)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신명(身命)을 내던져야 하네. 설사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만 쪽이 나더라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애착을 두어서는 안되네. 그러니 그대가 다시 한번 큰 신심(信心)을 내어,
내일 아침에 조실 스님께 가서 종전과 같이 묻게."

이 경책에 힘입어 다음날, 임제 스님은 다시 용기를 내어 조실방에 들어갔습니다.
"어떠한 것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입니까?"
이렇게 여쭈니,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이십 방이 날아왔습니다.

이번에도 목주 스님은 간병실에 누워 있는 임제 스님을 찾아와 사정얘기를 듣고 나서 거듭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 법은 천추만대(千秋萬代)에 아는 선지식을 만나기도 어렵고 바른 지도를 받기도 어려운 것이니,
밤새 조리를 잘 하고 다시 용기와 신심을 가다듬어 내일 조실 스님을 찾아가게."

그 다음날도 임제 스님은 조실방에 들어갔다가 역시 종전과 같이 혹독한 방망이만 이십 방 맞고 물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임제 스님은 더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떠날 채비를 다 해놓고서 황벽 선사께 가서,
"스님, 스님께서는 큰 자비로 저에게 법(法)방망이를 내려 주셨는데, 제가 업(業)이 지중하여 미혹(迷惑)한 까닭에
진리의 눈을 뜨지 못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고는 하직인사를 올렸습니다.
"어디로 가려는가?"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바로 고안(高安) 강변으로 가서 대우(大愚) 선사를 찾게. 틀림없이 자네를 잘 지도해 주실 것이네."

그리하여 임제 스님이 바랑을 짊어지고 고안 대우 선사 처소를 향하여 수백 리 길을 가는데, 걸음걸음이 의심이었습니다.
무슨 의심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났는가 하면,

"불법의 가장 긴요한 뜻을 물었는데 어째서 황벽 선사께서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세 번 다 20방씩 60방을 내리셨을까?"

그대로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빠져서 걷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수백 리 길을 걸어갔습니다.
팔만 사천 모공(毛孔)에 온통 그 의심 뿐이었던 것입니다.(...후략)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참선법은 바로 이와 같은 일념(一念)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구하는 한 생각이 간절하게 지속되게 되면, 그 가운데서 억겁다생(億劫多生)에 지은 업(業)이 빙소와해(氷消瓦解) 되어 몰록 진리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선지식(善知識)께서 일러주시는 일언반구(一言半句)가 그대로 화두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선지식께 화두를 받아서 진실하게 공부를 지어가야 합니다.

또 화두는 혼자서 책을 보고 하거나, 스스로 의심이 나는 것을 화두 삼아 공부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먼저 깨달은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참구를 해야 대도(大道)에 이를 수 있습니다.

진제 조실 큰스님께서는 1700여 가지의 화두 중에서 현대인들에게 가장 와닿고 의심이 나는 것으로 항상 다음과 같은 화두를 내려주십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으로, 백 년 이내에 썩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고 나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몸뚱이는 '참나'가 아닙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이 몸을 받기 전, 태어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입니까?

모든 부처님도 '참나'를 알아 위대한 부처님이 되셨고, 역대 도인들도 '참나'를 알아 위대한 도인이 되셨으니,
모든 분들도 '참나'만 알면 위대한 부처님이 되고 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던고?"


항시 이 화두를 들고 일상생활 속에 오매불망 간절히 참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