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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성수(1889~1944) 스님은 13세에 출가하여 경율론삼장(經律論三藏)을 두루 섭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진리의 본체(本體)에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것임을 통감하여 참선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전국의 명산제찰(名山諸刹)을 두루 행각(行脚)하며 선지식을 참예(參詣)하고 공부에 혼신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참선정진에 전력(全力)하기를 10여 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두일념(話頭一念)이 현전(現前)되는 경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스님의 세수 35세 되던 1923년, 심기일전(心機一轉)하기 위해 부처님전에 대발원(大發願)을 세워 백일기도를 한 후,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각오로 백양사 운문암에서 동안거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밤낮의 구별이 있을 수 없는 대분심(大墳心)이었던 터라 자연히 화두 한생각이 뚜렷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섣달 보름이 되어 우연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문밖에 나서는데 그 순간,
홀연히 마음 광명이 열려 가슴에 막혀 있던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기를,

     
出門驀然寒徹骨 (출문맥연한철골)
     
豁然消却胸滯物 (활연소각흉체물)
     
霜風月夜客散後 (상풍월야객산후)
     
彩樓獨在空山水 (채루독재공산수)

     문을 열고 나서자 갑작스레 찬 기운이 뼈골에 사무침에
     가슴 속에 막혔던 물건 활연히 사라져 버렸네.
     서릿바람 날리는 밤에 객들은 다 돌아갔는데
     단청 누각은 홀로 섰고 빈 산에는 흐르는 물소리만 요란하더라.

그리하여 깨친 바를 점검받고자 당시 남방 제일의 선지식으로 알려져 있던 혜월(慧月) 선사를 참예(參詣)하여 여쭈었습니다.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 스님들은 어느 곳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하고 계십니까?"
이에 혜월 선사께서 양구(良久:말없이 가만히 있음)하시므로, 스님이 냅다 한 대 치면서 다시 여쭈었습니다.
"산 용(龍)이 어찌하여 죽은 물에 잠겨 있습니까?"
"그럼 너는 어쩌겠느냐?"
스님이 문득 불자(拂子)를 들어 보이니 혜월 선사께서는 짐짓,
"아니다."
라며 부정하셨습니다. 이에 스님이 다시 응수(應酬)하기를,
"스님, 기러기가 창문 앞을 날아간 지 이미 오래입니다."
하자, 혜월 선사께서는 크게 한바탕 웃으시며
"내 너를 속일 수가 없구나."
하고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혜월 선사께서는 성수(性粹) 스님을 인가(印可)하시고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을 부촉하여 '운봉(雲峰)'이라는 법호와 전법게를 내리셨습니다.


▲ 혜월 선사께서 운봉 선사에게 내리신 친필 전법게

     
付雲峰性粹 (부운봉성수) ....... 운봉 성수에게 부치노라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 일체 함이 있는 법은
     
本無眞實相 (본무진실상) ....... 본래로 진실한 상이 없는 것,
     
於相若無相 (어상약무상) ....... 모든 현상이 실상 없는 줄을 알면
     
卽名爲見性 (즉명위견성) ....... 곧 그대로가 견성이니라.

이후 제방에서 납자를 제접하시며 선(禪)의 종지(宗旨)를 크게 펼치시니, 도법(道法)의 성황함이 당대의 으뜸이었습니다.
선사께서 내원사(內院寺) 조실로 계시던 중 1929년에, 훗날의 법제자인 향곡 혜림 스님을 만나셨습니다.